술 권하는 사회

안녕? 난 방학을 맞이하여 스스로를 단련시킬 생각은 안하고 축 늘어져서 놀고만 있는 부끄러운 교사 텐이라고 해. 비록 내가 병신같은 교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랑 어느 정도 친하게는 지내고 있거든. 친한 아이들 중에서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아이는 많지 않지만 그런 아이를 일 년에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어디야? 안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

어쨌든 첫 해에 가르쳤고 지금은 가르치지 않지만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가 있어. 참 이상하지만, 어쩌다 보니까 나는 공부 잘 하는 아이들과 친해.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우리 학교의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좀 친화력이 있고 선생님들과 잘 지내거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 어쨌든 이 아이도 머리가 무지 좋아. 1학년 때부터 얘는 좀 천재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했었어. 상식도 풍부하고 공부도 잘 하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성격 좋고 오덕하고(응?), 여튼 그랬거든. 이 아이가 며칠 전에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오밤중에 싸이 대화창으로 이야기를 좀 했어.

이 아이의 고민은 말야, 얘가 머리가 워낙 좋고 수학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고에 가고 싶어해.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곳이 좀 시골이라 특목고 입시를 전문적으로 하는 학원이 없어. 얘는 그래도 1학년 때부터 혼자서 계속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준비를 해왔대. 그런데 지난 겨울부터 이 동네에 갑자기 학원파가 생겼어. 매일 성남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분당에 있는 유명한 특목고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야. 학원비에 교통비가 엄청나게 드는 것도 문제고, 성남으로 가는 버스가 3시 40분에 있는데 6교시가 끝나는 시각은 3시 20분이거든. 그래서 얘네는 종례도 청소도 못해. 그러면서 다니는 거야.

이 아이는 부모님께 그만한 부담을 안겨드릴 수가 없대. 그래서 학원파에 끼지 않았어. 그런데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거야. 작년 경기 과학고에 이 학원 출신이 몇 퍼센트가 붙었다더라, 여기 안 다니면 가망이 없다더라, 과학고 합격자 중 학원 다닌 아이가 100%라더라.. 이 아이는 자기는 학원 다닐 생각이 없고 혼자서 할 거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너는 촌놈인 거야 라고 하더래. 그런 말을 들어도 얘는 그냥 혼자 공부했어.

그런데, 이번에 과학 경시대회 시대회에 나갔는데, 3명만 뽑아서 도대회로 내보낸대. 얘는 아깝게도 4등을 했대. 그런데 1,2,3등이 다 학원파라는 거야. 얘가 더 우울한 건, 자기는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학원에 다닌 아이들이 3개월만에 자신의 2년을 너무 쉽게 따라잡고 너무 쉽게 뛰어넘더라는 거야. 이게 앞으로 계속될 거 아냐. 얘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다른 아이는 이번에 무슨 대회에서 전국 1등까지 했대. 이게 바로 옆에서 이끌어준 아이와 혼자서 한 아이의 차이인 거야.

그러니까 이 아이도 자꾸 회의감이 드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해서 과연 과학고를 갈 수는 있는 걸까. 다른 수학 과학 선생님들께도 여쭤봤대. 정말로 과학고에 가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냐고. 어떤 대답을 들었냐고 물어보니까 자세히는 이야기를 안 해주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현실이라고 이야기해 주시더래. 자꾸 아이들이 학원을 다녀서 보통 중학생 수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마구마구 풀어내고 경시대회 입상 경력 같은 건 기본으로 따 오니까 특목고에서는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고, 그럼 학원은 또 그걸 따라잡고, 또 다시 학교에서 시험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악순환의 반복이래.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자기는 부모님께 더이상 부담을 드릴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런데, 젠장, 정말 해 줄 말이 없더라. 내가 그 아이에게 한 이야기는, 어쨌든 학원 다닌 아이들은 3등, 너는 4등이다. 비록 3등까지만 나갈 수 있으니까 너는 입상 경력이 없고 그 아이들은 있기 때문에 니가 과학고 입시에는 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과 너의 수준 차이는 크지 않다. 어차피 목표하는 대학이 비슷할테니 3년 후를 생각한다면 분명 너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토익 만점에 경시대회 문제를 척척 풀어내도, 대학 교수님들은 계속해서 신입생들 학력이 저하된다고 걱정하더라. 그건 학원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할 능력이 자꾸 떨어져서 그런 거다. 긴 인생으로 봤을 때 지금 너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고 느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니 인생에 있어서 지금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라고 이야기했어.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래,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는 분명 그랬어. 중학교 내신만 좀 잘 하면 특목고에 합격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하면 됐었거든. 그런데 지금 상황은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인 거야. 그래, 현재는 분명 일반 인문계 학교에서도 열심히 하면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지만, 이렇게 계속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 과연 3년 후에도 그럴까? 지금 3개월만이니까 차이가 3등과 4등이지만, 그 차이가 3년을 쌓이면 어떻게 변할까?

참 슬픈게 말야, 난 학원파 아이들도 알고 이 아이도 알거든. 지적 능력에서 이 아이들은 다 비슷한 수준이야. 그런데 어떤 집에서는 아이에게 지원을 해줬고, 어떤 집에서는 못해줬어. 지금 벌어진 차이는 바로 그 지원의 차이거든. 그리고 지원이라는 건 결국 경제력이야. 경제적인 지원을 어렸을 때부터 팍팍 받은 아이는 특목고에 일류대 코스를 밟아 가겠지. 그런데 지적 능력이 비슷한데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 힘든 아이들은 갈 수가 없는 거야. 특목고가 그런 데였어? 지금 이미 특목고 합격생 중에 학원 안 다닌 아이가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을 정도면 특목고는 이미 귀족 학교잖아. 안 그래도 학비도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비싼데. 그런데 자사고까지 몇백 개를 설립하겠대. 그럼 완전히 귀족 학교와 평민 학교가 나뉘겠네? 그런 예상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어보니까 참 지랄맞더라.

안그래도 요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게 있었거든. 우리 학교는 비록 학력 수준에서 강남이나 분당에 훠어어어어어어어어얼씬 뒤떨어지긴 해. 하지만 상위권 아이들을 보면 솔직히 내 학창시절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거든? 아니, 사실 지금의 나보다 똑똑한 것 같기도 해. -ㅅ-;;; 우리 반 반장의 경우는 알고 싶다고 해서 중3 과정에 나오는 품사를 방과후에 따로 가르쳐 준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우리들에게 '여러분, 지금까지 이렇게 배웠었죠? 그럼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던졌던 질문들을 나에게 하는 거야. 태어나서 품사 개념을 제대로 들어본 게 처음인 아이가 말이야. 늘 스스로 공부를 했으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되는 거지. 지금이야 아직 중2라서 안 배운 건 모르는 게 많지만, 분명히 똑똑한 건 사실이야.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가는 아이들이 사실 별로 없거든. 그러니까 참 이상하잖아. 분명 나의 학창시절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들이 많은데 왜 이 아이들이 자꾸 떨어진다고 할까? 그럼 강남이나 분당의 상위권 아이들은 대체 어떤 아이들인데? 정말 떨어지는 게 맞는 거야?

나야 첫 발령이 이 학교니까 다른 지역 사정을 잘 모르잖아.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께 여쭤봤어. 그랬더니 대답이 이거더라. 결국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가진 아이들은 지역별로 비슷비슷하게 존재하겠지만, 옆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생긴 작은 차이가 쌓이다 보면 큰 차이로 변한다는 거야. 조낸 슬프지 않아? 능력이 비슷한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뒤떨어진다는 게? 국가 입장에서 조낸 낭비 아냐? 이렇게 인재가 많은데 이런 인재들을 못 살린다는 게?

물론 학교에서도 심화반이니 뭐니 해서 그런 아이들에게 수학 과학 심화 과정을 가르치고 올림피아드 수준의 문제를 가르쳐주거나 하는 수업을 하기도 해. 하지만, 학원에서 오로지 그것만 몇 년을 연구하는 강사들과, 자기 학교 수업 다 하고 자기 맡은 업무 다 하고 담임까지 맡으면서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방과후 수업을 준비하고 시간당 2~3만원 받으면서 가르치는 교사들과 당연히 차이가 있지 않겠어?

이러니까 차라리 학교에서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붙잡아두고 야자 시키는 게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까지 드네. 최소한 그렇게 하면 돈 많이 드는 사교육 때문에 생기는 수준차가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몇몇 지역에서 몇몇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야자 후에 새벽 2~3시까지 또 사교육을 시킨다고는 하지만 말야. -_- 최소한 지금처럼 많은 아이들이 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질문을 해 볼게. 그 올림피아드니 경시대회니 하는 것 있잖아. 특목고에 들어가서 수업 내용을 따라가려면 꼭 그걸 알아야 해? 어디 유학갈 거 아니고 그냥 우리 나라에서 대학 갈 거면 그냥 고등학교 수준에서 조금 발전된 수준까지 아는 정도로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특목고 입시 문제가 꼭 그렇게 수능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시험을 볼 필요가 있느냐는 거야. 중학교 때 이미 수능 수준을 넘어선 특목고의 입시 문제를 풀 수 있었던 우리 나라의 인재들은 지금 다 어디 가 있는데? 공교육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를 내서 학생을 뽑으면, 그 학교는 그런 우수한 인재들의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정말로? 왜 그 정도 수준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거야? 뻔히 공교육에서 그 정도 수준을 감당할 수 없는 걸 알면서?

대체 이놈의 나라의 교육은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런 상황에서, 중2까지 이항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차 방정식을 못 풀었고, 삼각함수의 개념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서 수능에서 삼각함수는 다 포기했고, 그나마 대학 입학 후에는 수학에서 손 다 떼었더니 이제 중학교 수학도 모르겠는-_- 이런 무식한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내가 능력이 되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수학 과학은 그 아이들 수준이 내 수학 과학 수준이 최고로 높았던 재수생 시절보다 훨씬 높을테니-_- 아무 힘도 못 되어주네. 이 병신같은 교사는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그냥 하소연만 들어주고 술자리에서 사회에 탄식하며 술만 퍼마시고 있어. 아이들만 불쌍해. 매일 차 안 막혀도 한 시간 거리의 학원에 다니면서 '여기 안 다니면 안된대. 그러니까 니가 촌놈인 거야.' 라는 말을 친구에게 할 수 있게 세뇌된 아이도, 능력은 분명 있는데 경제적인 여건이 안돼서 학원에 못 다니고 자기보다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 학원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자신을 추월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이도.

by 텐(天) | 2008/08/03 22:03 | ::FreeTalk::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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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푸른마음 at 2008/08/03 22:09
같이 술 나누고픈 슬픈 이야기다.
(▲포스팅 성격에 맞추어 저도 같은 어체를 씁니다.)
Commented by 아르메리아 at 2008/08/03 23:17
... 글로 읽으니 훨씬 구구절절 술이 막 당기네요 ...
Commented by 히카리 at 2008/08/03 23:37
한숨만 나오는군요.-_-;
Commented by clytie at 2008/08/03 23:54
슬픕니다.
이오공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텐님께서 싫어하실 듯 하여...그냥..조용히 읽고 갑니다.
그런데 더 싫은 건 말이죠. 제가 중, 고등학교를 도시 외곽에서 나왔거든요. 텐님께서 근무하는 지역과 같은 현실을 제가 아니까... 제 막내 동생이 막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혹시나 해운대 신시가지로 학원다니는 아이나 비싸고 좋은 학원 몇개씩 다니는 아이들보다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우리 동생도 버스 태워서 좀 멀리까지 학원 보내야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단 점입니다. 제가 그렇게 되어가고 제 동생도 그렇게 만들 것 같아서 싫고...짜증이 납니다. 돈이....이제 아이들의 졸업 기록과 이력서를 채워가는 시대인 것 같아요. 슬프게도.
Commented at 2008/08/04 01: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카린트세이 at 2008/08/04 03:08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아져야 되는데 어쩨 그렇지 않은곳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8/08/04 19:44
1. 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2. 그래서 저는 밤마다 맥주를 한병씩 마십니...(응?)
Commented by saells at 2008/08/06 21:07
정말 슬픈 일이에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제발 우리를 믿어달라"는 쪽이었는데, 그런 학교도 요샌 참 보기 힘들더라구요. 심지어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어느어느 학원이 좋다."광고하는 학교도 있고..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씁쓸한 현실.
Commented by 브라이언 at 2008/08/09 07:16
이거뭐...

요즘교육현실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정말 옛말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있는 사람의 자식이 용되는거죠. 너무 씁쓸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학원한번 다녀본 적이 없는데,
요즘애들이 학원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해요.
게다가 자기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고 유식해진걸 보면 초큼 무섭...

그에 비하면 저는 지적능력이나 정신연령이 16살에서 멈추어진 것 같거든요..;;;;

케베스사장이 강제해임된 어제같은날도 있는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합니다.
Commented at 2008/08/15 19:44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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